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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 죽음이 반복되는 꿈…배수아 소설집 '뱀과 물'

성장과 죽음이 반복되는 꿈…배수아 소설집 '뱀과 물'
죽음·상실과 맞닥뜨린 소녀들 몽환적 이미지로 그려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독특한 작품세계로 해외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작가 배수아(52)가 신작 소설집 '뱀과 물'(문학동네)을 펴냈다.
단편소설 두 편을 묶어 경기문화재단 지원으로 출간한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2016)을 제외하면 2010년 '올빼미의 없음'(창비) 이후 7년 만에 내는 소설집이다.
표제작 '뱀과 물'을 비롯해 '눈 속에서 불타기 전 아이는 어떤 꿈을 꾸었나', '얼이에 대해서', '1979', '노인 울라(Noin Ula)에서', '도둑 자매', '기차가 내 위를 지나갈 때' 등 7편이 담겼다.
소녀의 나체를 찍은 어두운 흑백 사진의 표지 이미지는 이번 소설집의 분위기를 잘 드러낸다. 체코 사진작가 프란티셰크 드르티콜의 이 사진 작품은 작가가 직접 출판사에 표지로 써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소설 7편 모두 질서정연한 서사 구조로 되어 있지 않으며, 이야기의 난해함은 전작들보다 더 심해진 듯도 하다. 그러나 소설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과 이미지, 문장들은 이 책을 일관적으로 관통하는 그림의 윤곽을 어렴풋이 보여준다. 독자는 어느새 이 낯설고 몽환적인 세계에 빠져든다.
누군가에 잡혀가지 않기 위해 남장을 해야 하는 여자아이, 화형당한 소녀, 키가 어른처럼 큰 소녀, 전염병에 걸린 소녀 등 소설의 주인공은 모두 어린 여자다. 이들은 어머니나 아버지의 부재 속에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반복적으로 목도한다. 그 죽음과 상실은 삶 속에서 실제 일어난 일인지, 꿈속에서 보는 환상인지 혼돈 속에 뒤섞여있다. 삶과 죽음, 기억의 망각과 성장이 반복되고 뒤엉킨다.
'눈 속에서…'와 '노인 울라에서'는 연작이다. 어느 유원지 컨테이너에서 아버지는 아이에게 적군에게 잡혀 화형당한 빨치산 소녀에 관한 책을 읽어준다. 잠이 들었다 깬 아이는 아버지가 사라졌음을 발견하고 경찰서에 가는데, 이곳에서 만난 아동심리학자는 아이 아버지가 '스키타이족의 무덤'으로 갔다고 말한다. 아이는 땅 밑에서 솟아오른 트럭을 타고 낯선 초원에 도착해 '스키타이족의 무덤'이라는 구릉 위로 힘겹게 올라간다.
'얼이에 대해서'에는 여덟 살인 주인공과 단짝인 '얼이'가 등장한다. 얼이의 엄마는 늘 웃기만 하는 '미친 여자'다. 얼이는 아버지가 쥐가 들끓는 곳인 '반두'의 왕이었으며 자신도 아버지를 따라 그곳으로 떠날 거라고 말한다. 기차길 선로에서 놀던 아이들은 험상궂은 남자의 위협을 받고 도망치는데, 이후 얼이는 사라진다. 사람들은 얼이가 어떤 남자에게 끌려가 살해됐다고 말한다. 세월이 흐른 뒤 주인공은 철교 앞에서 얼이를 보게 되는데, 얼이의 몸은 커져 있고 주인공은 얼이의 엄마와 똑같은 행색을 하고 그를 향해 웃는다.
'1979'의 주인공인 마흔네 살 남자 교사는 "분주하고 항상 시간에 쫓기면서도, 살짝 먼지가 덮인 허깨비처럼 쓸쓸한 일상"(104쪽)에서 반 학생인 키 큰 소녀에게 이상하게 집착한다. 그는 가족들에게 잊혀 가는 스무 살 아래의 남동생에게 매일 전화를 거는데, 남동생은 그를 비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어린 시절은 망상이에요. 자신이 어린 시절을 가졌다는 믿음은 망상이에요. 우리는 이미 성인인 채로 언제나 바로 조금 전에 태어나 지금 이 순간을 살 뿐이니까요. 그러므로 모든 기억은 망상이에요. 모든 미래도 망상이 될 거예요. 어린아이들은 모두 우리의 망상 속에서 누런 개처럼 돌아다니는 유령입니다."(94쪽)
문학평론가 강지희는 "이번 소설집에서 배수아는 또 한 번의 전회를 이룬 것처럼 보이고, 이는 죽음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여기에는 죽음이 외부로부터 도래해 문득 직면하게 되는 기괴함이 아니라, 우리가 단 한 번도 죽음과 분리된 적 없이 친숙하게 살아왔으리라는 깨달음이 있다. 지금의 나 역시 매 순간 망각과 함께 흘려보낸 과거의 죽음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받아들일 때, 이제 애도해야 할 대상은 지금의 내가 말살해온 또다른 자아들이 된다"고 해석했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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